
[당선 소감]
코스미안상 공모와는 좋은 기억이 있다. 21년도에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읽고>’를 통해 입선해서 작품이 수록되어 공저에 해당하는 도서 1권을 갖게 되었다. 그 전에 이미 개인 도서 4권을 발간하였기에 처음 갖게 되는 도서는 아니었으나 뿌듯하였다.
24년도에 다른 입선작 2편을 통해서 2권의 공저를 더하게 되었다. 이번 코스미안 은상으로 말미암아 또 한 권의 공저를 갖게 되어 벌써 8권의 도서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일이라고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처음으로 본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누리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글쓰기와 도서의 소중함을 가슴에 간직하고 일상에서 구현할 때 후회하는 삶은 아닐 것 같다. 거창한 것이 아닌 산책하듯 여유롭게 그러나 때로는 고삐를 조이고 푹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모르는 때도 있었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칼럼] 억새풀 언니
그 곳을 네비게이션으로 찾으려면 꼭 ‘생태’란 단어가 들어가야 제대로 안내가 뜬다. 호수 정문 입구 건너편에 꼭 너 댓 분의 시골 할머니들이 시골에서 가져온 푸성귀들을 늘어놓고 앉아 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계절 따라 있을만한 것들이다. 요즈음엔 냉이와 쑥, 어린 상추, 어린 파, 껍질 깐 은행, 그리고 서리태 콩 등이었다. 일 년 중에서 어김없이 발길을 붙잡아 매는 것은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매주 사게 되는 야들야들한 찰옥수수였다. 갓난아기의 엉덩이 살 같은 부드러움은 한없는 풍요와 만족감을 느끼게 하였고 맛 또한 다른 곳에서 사먹는 옥수수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 그리운 옥수수를 여름철이면 꼭 할머니들이 갖고 나오시는 좁은 도로가를 건너서 정문에 다다랐다.
나무 데크를 따라 여유 있게 한 시간쯤 걷다 보면 꽤 너른 들판이 펼쳐있다. 가느다란 줄기에 강아지풀을 닮은 부드러워서 한 쪽으로 쏠리는 듯한 은빛의 꽃들이 맑은 하늘과 환상의 짝을 이루어 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들판을 온통 은빛 꽃들이 가느다란 목을 지지대 삼아 쭉쭉 뻗어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운치가 있었다. 몇 년째 들판은 계절과 상관없이 자태가 변하면 변하는 대로 그 곳에서 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하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늦가을엔 멀리 가지 않아도 그 정도의 면적이면 충분히 눈요기가 되고도 남았다. 눈 내리는 겨울에도 누런 볏 짚단 같은 색깔로 또 꽃이 다 흩날리고 난 후 줄기의 뻣뻣함으로 마른 볏 줄기를 연상시키는 식물의 건조한 상태를 엿보며 지나치면서 씩씩한 보행을 즐기곤 하였다.
지난겨울 몇 차례 방문했을 때에도 눈이 오지 않은 날씨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들판을 옆구리 곁 조금 떨어져 지켜보면서 지나쳤다. 그러나 지난 주말엔 날씨가 화창하여 꽃샘추위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는데도 좀 한산하였다. 너른 들판을 끼고 걷다 보면 보행자들이 줄이어 오고 가기 때문에 멈추어 서서 볼 때는 일부러 비껴서 멈추지 않으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주말은 한가한 틈을 타 시선을 오래 거두지 않았다. 아직 연두 색깔은 전혀 올라오지 않았고 여전히 누런 볏짚 색깔이었다. 호수 둘레의 나무들은 일제히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나무들은 마치 오톨도톨 작은 뾰루지가 돋으려고 자리 잡듯 하였다. 연두 빛들이 서툴게 안쓰러이 토도독 몸살하고 있는 것 같아 바짝 다가서서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연장한 나무 데크의 가장 끝에 자리한 정자에 갈 때는 저 너른 들판에 농작물 농사가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정자에서 되돌아 지나칠 때는 한켠에 비껴 선 채로 물끄러미 꽤나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아직 연두색 생명 줄기로 치장하지는 않았지만 갈 때마다 언제나 그 곳에서 너른 품으로 맞아주어서 든든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화훼 단지처럼 화려한 색으로 식물의 키와 꽃 색깔에 맞추어 병렬식으로 또는 온갖 사물이나 동물의 형태에 맞춘 꽃 정원 가꾸기가 아니어서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그것들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휘어주었다. 굳이 조화롭게 더 아름답게 보이려고 뽐낼 필요도 없었다. 그냥 그 곳에 존재 자체로 보행자들을 맞이하고 위안을 주었다. 단지 생명력이 강하여 굳이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고는 그 많은 억새풀은 사라지지 않고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억새풀이라는 이미지는 먼저 강인함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헤쳐 나가는 결국은 승리자의 이미지가 있다. 강한 바람이 불 때 바람결 따라 한없이 흔들거린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외갓집 새언니는 서른일곱에 동갑인 남편을 병으로 잃었다. 그 후로 혼자서 딸 넷을 키워냈다. 시집오기 전에는 양재학원에서 양재 선생을 한 적이 있었으나 홀로 된 이후 한복집을 열었다. 중소 도시에서 몇 년을 하다가 대도시로 옮겨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바느질에 매달렸다. 새언니는 한창 젊은 때라 새벽에 일어나 온몸에 찬물을 끼얹고 하루를 시작했다고 고백하였다. 그것은 한겨울에도 계속된 일과였고 그 때부터 평생 신앙에 의지하고 살았다. 딸 넷의 생계는 물론이고 교육까지 책임진 입장에서 몸과 마음이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새언니를 일으켜 세운 것은 새벽에 찬물 목욕과 새벽 기도였다.
마음속에 묵은 것이나 응어리진 것들이 일시에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믿고 의지할 데가 없으니 전에 잘 몰랐던 종교를 찾게 되고 그 기세는 불길과 같았다. 이것들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네 딸들 때문이었고 죽은 오빠와의 열렬한 사랑 추억 덕분이었다.
그렇게 매달리다보니 집이 두 채로 늘어날 돈이 모아졌다. 그 때 돈을 빌려달라는 지인에게 빌려주고 떼였다. 그러나 그 어려운 시기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였고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과 억척스러운 생활력으로 자립하여 잘 살고 있다. 소아마비인 막내딸도 결혼하여 미국에서 약사를 하며 목사인 남편과 딸 하나를 두고 화목하게 살고 있다.
글로 표현하니 훌렁훌렁 맺힌 자국 없이 91세의 세월이 흘러간 것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한복 짓기로 평생 아이 넷을 기르고 가르치는 일이 가녀린 한 여인이 감당하기에 녹록치 않았음을 새언니의 귄있는 말솜씨로 듣게 되면 새록새록 새겨졌다. 새언니의 말씨가 듣고 싶어서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어쩌다 방문하여 마주 보고 지난 얘기를 나누기도 즐거웠다.
그런 새언니의 삶을 억새풀에 견주어본다. 메마른 땅에서도 죽지 않고 견고한 줄기로 누렇게 다시 보드라운 털들로 꽃피우며 산야에 흐드러진다. 여러해살이 풀이어서 몇 년을 내리 가보아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흔들리고 있다. 가볍게 흔들리는 것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가벼이 흔들거린다. 지진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흔들리게 설계된 내진 건물들처럼.
새언니에게도 중매가 몇 차례 들어왔지만 아이들 생각 때문에 번번이 거절했다는 얘기를 들려주면서 80이 넘어서 조금은 아쉬워하였다. 미풍에 흔들리는 가을의 억새풀처럼.
그런 새언니가 지난 겨울 흩날리는 눈발 속에 홀연히 떠나고 말았다. 자주 걷게 되는 생태원 억새풀밭을 지나치면서 새 언니의 삶을 떠올리며 언니는 내 마음속 억새풀로 자리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언니는 제대로 전달 받았다는 의미로 가벼이 흔들리겠지. 결코 초라하지 않은 강인하고 아름다운 억새풀로 기억되어 고맙다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대답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