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형목사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봉사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신앙의 수고를 구원의 자격으로 여기면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게 되고, 은혜와 삶을 떼어 놓으면 고백은 생활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장재형목사(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의 로마서 10장 설교는 이 물음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에서 풀어 갑니다. 믿음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응답이며, 예배와 순종은 받은 사랑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열심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바라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로마서 10:1). 이스라엘의 불신을 다루는 그의 말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간절함에서 나옵니다. 그들이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밝히는 까닭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이 마음을 따라 읽을 때, 말씀은 다른 사람의 신앙을 판정하는 잣대에 머물지 않고 우리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로마서 10장 2~3절이 짚는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한 채 자기 의를 세우려 했습니다. 자기 의란 내가 지킨 규칙과 쌓아 온 수고를 근거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는 태도입니다. 열심이 크더라도 그것으로 자신의 구원을 보장하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집니다.
바울 자신도 회심 전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박해할 만큼 종교적 열심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 3장 8~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귀하게 여기며, 믿음으로 주어지는 의를 구합니다. 자신이 자랑하던 것들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올바른 지식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설명할 수 있는지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알수록 그분의 은혜에 자신을 맡기는지가 함께 드러나야 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말씀을 오래된 신앙 경력과 교회 안의 헌신에도 적용합니다. 예배와 봉사는 소중하지만, 그 수고가 하나님께 구원을 요구할 권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회개할 필요가 적어지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성실함을 돌아볼 때에는 그 수고가 무엇을 의지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율법의 마침이신 그리스도와 가까이 온 은혜
그렇다면 율법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가르치고, 그 앞에 선 사람이 자신의 죄와 한계를 깨닫게 합니다. 로마서 10장 5절이 말하는 율법의 의를 따라 살려면 그 요구를 행해야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온전히 이루지 못합니다. 몇 가지 잘한 일을 더하는 방식으로는 자신의 죄와 부족함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 답을 그리스도에게서 찾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로마서 10:4). 이 설교는 ‘율법의 마침’을 율법이 향하던 목적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의미로 풀이합니다. 율법이 드러낸 인간의 죄와 연약함 앞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진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구원을 바라보는 기준이 분명해집니다. 내가 쌓은 공로를 얼마나 확신하는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의지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근거를 자기 안에서만 찾던 사람은 이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받는 구원이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6~8절은 그 말씀이 입과 마음 가까이에 있다고 전합니다. 하늘에 올라가거나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이미 우리에게 들려온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신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뒤에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지금 들려오는 복음에 믿음으로 응답하도록 초청합니다.
마음의 믿음과 입의 고백이 삶으로 이어질 때
그 응답에는 분명한 내용이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은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음을 마음으로 믿는 일을 말합니다. 구원의 근거가 되는 십자가와 부활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일과 입으로 시인하는 일은 이 복음에 대한 응답 안에서 긴밀히 연결됩니다.
장재형 목사는 마음에 받아들인 믿음이 입의 고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신앙의 표현을 익숙하게 말하는 것만으로 그 의미까지 받아들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른다는 말에는 그분께 삶을 맡기고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입술의 고백을 돌아본다는 것은 자신이 실제로 누구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살피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태도도 여기서 구체화됩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지난 헌신을 내세워 변명하기보다 회개하며 뜻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믿기에 자신을 옳게 보이도록 꾸며야 할 이유가 줄어듭니다. 순종은 그렇게 이미 받은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자랍니다. 그 순종을 또 하나의 공로로 쌓으려 할 때에도 구원의 근거이신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관계를 이해하면 처음의 질문에도 답이 보입니다. 예배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을 드리는 시간이 되고, 봉사는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는 일이 됩니다. 누군가 알아주는지에 따라 섬김의 의미가 모두 결정되지도 않습니다. 부족함을 발견한 날에는 회개하며 도움을 구하고, 맡은 일을 잘 감당한 날에는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수고의 이유를 바꾸어 갑니다.
이 초청에는 혈통이나 종교적 배경의 장벽이 없습니다. 로마서 10장 11~13절은 유대인과 헬라인의 차별 없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에게 구원이 열려 있음을 전합니다. 구원의 길에서 의지할 분은 오래 믿은 사람에게도 처음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도 같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자신에게 내세울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그분의 은혜를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은혜를 들은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길로 나아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면, 그분을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이 들려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4~15절에서 바울은 믿기 위해서는 들어야 하고, 듣기 위해서는 전하는 사람이 필요하며, 전하는 사람에게는 보내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교회의 전도와 선교는 이 관계 안에 있습니다.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전하고 보내는 일은 이웃의 구원을 바라는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전해야 합니다. 성도가 말씀을 깊이 듣도록 돕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과 함께 기도하며, 낯선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에게도 구원의 소식이 닿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가까운 이웃이 신앙에 관해 묻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복음을 설명하는 일 역시 그 부르심 안에 있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누군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립니다.
전하는 사람도 계속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이 들음에서 나며, 그 들음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가르칩니다(로마서 10:17). 이미 아는 내용이라고 판단하고 지나치면 자신을 향한 말씀의 요청을 놓칠 수 있습니다. 예배와 성경 묵상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새롭게 듣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할 때 전하는 말에도 그 사랑이 담깁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로마서 10:16). 그럼에도 로마서 10장은 순종하지 않는 백성을 향해 종일 손을 펴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끝납니다(로마서 10:21). 이 오래 참는 사랑은 처음에 동족을 위해 기도하던 바울의 마음과 이어집니다. 상대의 반응을 자기 뜻대로 만들려 애쓰기보다 그가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기도하며, 복음을 들려줄 기회를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이제 받은 은혜에 응답하는 일상으로 이어집니다. 자신의 수고를 세던 생각에서 벗어나, 복음이 필요한 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고백이 그렇게 누군가를 향한 관심과 섬김으로 자라납니다. 오늘 내 입술의 고백은, 그 사랑을 아직 듣지 못한 누구의 곁으로 나를 이끌고 있을까요?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장재형목사 공식 홈페이지: www.davidjang.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