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1공장에 50대 신입 사원 K님이 계십니다. 소위 '명문대' 출신인 그의 현재 직무는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나 원재료를 상하차 하거나 재고를 파악하는 업무입니다. 처음 그의 이력서를 보았을 때 약간의 의아함과 함께, '50대 이후의 재취업은 역시 쉽지 않구나' 하는 씁쓸함이 스쳤습니다.
수개월이 흘러, 매일 수십 종의 제품이 바쁘게 드나드는 1공장에서 K님은 '너무 느리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본사에 있는 제 귀에까지 부정적인 평가들이 들려왔습니다. 그 중에 "학벌은 역시 아무 소용없다"는 게 머릿속에 맴돌더군요.
얼마 전, 2공장을 지어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새 공장에도 인력이 필요했기에 회사는 K님에게 전근을 권유했습니다. K님은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런데 2공장에서 K님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별도의 야근 수당이 없어도 스스로 현장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공장이 자리잡을 때까지 매주 방문하시던 임원분은 말끔하게 정돈된 창고와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는 현장을 보며 흐뭇해하셨습니다. 저 역시 K님이 혼자 처리해 내는 엄청난 업무량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1공장에서의 K님을 떠올려봅니다. 단지 누군가의 일방적인 지시를 받는 구조가 맞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나이 어린 동료와 손발이 맞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과 상극인 조직 문화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기존 공장의 불합리한 프로세스를 바꾸지 못해 답답함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임원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역시 명문대 출신은 다르구만."
명문대 출신이라 해서 일을 잘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아닐테죠. 자신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대목입니다.
하지만 제게 다가온 건 '같은 사람, 같은 업무임에도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K님이 비로소 자신의 주도성을 발휘하고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자리'에 놓였기에 비로소 진가가 드러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세밀한 지시가 필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율성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존 시스템 안에서 강점을 발휘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역량을 발휘합니다. K에게 2공장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역량을 쉽게 단정 짓는 일이 아니라, 그가 가진 고유한 색깔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함께 환경을 만들어 가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스스로에게도 질문해 봅니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주도성을 펼칠 환경을 내어주고 있는지. 또한 그런 자리에서 나답게 일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