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허수아비

송희수

 

허수아비

 

 

이곳에 오기 전까지 가고 싶은 곳도 많았고

먼 길을 돌아 물어물어 찾아오는 사람도

제법 많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이 땅 주인마저

바람과 함께 도시로 떠난

쓸쓸하기 그지없는 묵정밭에 서 있다 보니

 

한 번도 누구와 맞서 본 적 없고

얼굴 붉히며 마음 아파본 적 없는데

인정사정없이 장맛비만 훑고

몇 차례 지나쳤을 뿐

땡볕마저

가릴 필요조차 없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 외딴 밭뙈기에서

 

웃거나 우는 법도 진작부터 잊어버린 채

넋 나간 표정으로 우두커니 섰다가

어쩌다 지나치는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끊었다며

 

하품이나 하면서

언제나 제자리 지키고 있는

낡고 허름한 차림의 허수아비를 보는 중이다.

 

 

[송희수]

2021년 『문학과 비평』 등단. 

시집 『갈대는 울 아부지다』, 『밤마다 솔숲에 가는 이유』

작성 2026.10.07 09:11 수정 2026.10.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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