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이곳에 오기 전까지 가고 싶은 곳도 많았고
먼 길을 돌아 물어물어 찾아오는 사람도
제법 많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이 땅 주인마저
바람과 함께 도시로 떠난
쓸쓸하기 그지없는 묵정밭에 서 있다 보니
한 번도 누구와 맞서 본 적 없고
얼굴 붉히며 마음 아파본 적 없는데
인정사정없이 장맛비만 훑고
몇 차례 지나쳤을 뿐
땡볕마저
가릴 필요조차 없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 외딴 밭뙈기에서
웃거나 우는 법도 진작부터 잊어버린 채
넋 나간 표정으로 우두커니 섰다가
어쩌다 지나치는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끊었다며
하품이나 하면서
언제나 제자리 지키고 있는
낡고 허름한 차림의 허수아비를 보는 중이다.

[송희수]
2021년 『문학과 비평』 등단.
시집 『갈대는 울 아부지다』, 『밤마다 솔숲에 가는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