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전시를 두 번째 찾았다. 이번에도 오래 시선을 붙든 작품은 〈별들의 춤〉이다. 황토에 물감을 개어 빚어낸 그윽한 미색의 아우라가 은은하게 눈을 감쌌다. 가깝게 다가서면 캔버스는 빛을 품은 채 유영하듯 일렁이고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자 작고 아득한 별들 위로 은하수의 축제가 펼쳐졌다.
정지된 화폭이 입체로 숨 쉬며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무한한 우주 한가운데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상상했다. 한 점의 그림이 우주를 보여주어 그것을 마주 보는 나를 일깨운다. 진함과 옅음이 어우러진 황토의 색조 사이로 번지는 푸른빛에서 내 존재가 티끌처럼 하찮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빛살에 안온하게 감싸이는 듯한 신비로움이 밀려들었다. 잠시 속세를 떠나온 듯한 정적 속에서 방혜자 작가가 평생 추구해 온 ‘빛’의 의미를 짚어보았다.
그녀에게 빛은 생명이자 사랑이며 평화와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작가는 빛 한 점을 찍을 때마다 보는 이에게 평화와 사랑을 건네는 마음을 담았다. 한 점 한 점의 빛은 심장에서 타오르는 예술혼이고, 구도자처럼 외로운 창작의 길을 걸어가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저마다의 가슴속에 간직한 화양연화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영혼의 이야기야말로 작가가 화폭에 담아낸 빛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방혜자의 빛은 신과 마음, 세계의 질서를 아우르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파동으로 읽히기도 한다.
작품 앞을 거닐던 질문은 자연스럽게 내 안으로 향했다. ‘나에게 빛이란 무엇인가.’책과 글, 철학적 사유와 배움을 통해 타인과 교유할 때 전해지는 크고 작은 울림과 음악의 선율에 몸을 맡긴 채 움직이는 나를 발견할 때 느끼는 순수한 기쁨이 요즘의 나를 일으키는 온화한 빛이다. 그 빛에 영혼의 플러그를 꽂으면 무거웠던 정신은 조금씩 맑아져 내면 깊은 곳에서는 기분 좋은 활력이 피어오른다.
방혜자의 작품에는 한지와 천연 안료, 흙의 물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황토의 대지성과 한지의 투과성이 만나면서 색은 단순한 색채를 넘어 깊이 있는 빛으로 변한다. 화면 위에 얹힌 빛이 아니라 종이와 천의 안팎을 스며들며 살아나는 빛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바라보는 위치와 거리에 따라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빛은 화면에 머물지 않고 관람자의 움직임 속에서 완성된다.
이어 마주한 네 점의 연작 앞에서는 발걸음이 오래 멈췄다. 한지 위에 원을 그리며 번져나간 다양한 색의 결은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는 오늘의 지구촌을 떠올리게 했다. 둥근 형상은 본래 우주와 생명의 순환을 품은 듯했지만, 그날의 눈에는 어딘가 갇혀 있는 세계처럼 보였다. 원 안에 머무는 빛과 색의 움직임에서 지구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마음속으로 그 연작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열돔 속의 물고기> 지구를 뒤덮은 열돔 속에서 생존마저 위협받는 인류의 머지않은 미래가 그 갇힌 원 위로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지만, 열돔 속에서는 제 궤도를 잃는다. 우리도 우리가 의지해온 자연의 질서가 흔들릴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아름다운 색의 결 안에서 불안과 위기의 감각을 읽어낸 것은 작품이 품은 생명의 기운이 나의 현실 감각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장을 뒤로하고 돌아온 뒤, 나만의 빛을 작은 그림에 담아보았다. 화폭 속 나의 빛은 음악과 글자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예술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서는 일이다. 우리는 작품을 바라보고 작품은 우리를 바라본다. 예술이라는 빛을 통해 우주를 보고, 아파하는 지구를 보고 그 앞에 선 나의 존재를 직면한다.
일상의 궤도 속에서 우리는 종종 빛을 잃은 채 살아간다. 반복되는 루틴과 대상과의 비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마음의 시야를 가린다.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빛을 보지 못한 채로 바깥에서 더 밝은 빛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예술은 그렇게 가려진 빛을 다정하게 찾아주는 매개체다. 작가가 캔버스 위에서 오랜 시간 일구어낸 빛이 삶을 관통한 철학의 산물이듯, 예술 작품을 마주하는 우리의 눈 역시 영혼의 창을 넓게 열어준다. 작품을 통해 지금의 나와 세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거대한 기후 위기의 흐름 앞에서 한없이 작고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글과 짧은 감상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겨난다. 그 거친 흐름 속에서도 저마다의 빛을 발할 수 있다. 작은 빛 하나가 어둠 전체를 없앨 순 없어도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고 다음 걸음을 내딛게 해 준다.
방혜자의 〈별들의 춤〉이 보여주듯이 티끌 같은 존재지만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는 저마다의 고유한 궤도를 그리며 춤출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용기일 것이다. 전시장 문을 나서며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빛을 느끼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제4회 코스미안상
제3회 문학뉴스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2024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 강사
꿈다락학교 시 창작 강사
문화재단 & 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 sylvie7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