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배 칼럼] 등댓불을 밝히는 지도자

이윤배

폭풍우 몰아치는 밤바다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높은 파도가 아니다. 나아갈 방향을 잃는 것이다. 배는 흔들려도 견딜 수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를 때 비로소 난파를 예감한다. 국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혼란의 시대일수록 국민은 자신들을 이끌어 줄 불빛을 찾는다. 그러나 요즘 정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등대는 서 있는데 정작 길을 더 환하게 밝혀야 할 불빛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불빛이 희미해질 때마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어두운 길을 밝혔던 위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세종대왕은 일반 백성도 쉽게 제 뜻을 쓸 수 있도록 문자를 만들었고, 이순신 장군은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바다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백성의 어려움을 먼저 살피고, 시대가 맡긴 책임 속으로 앞장서 걸어 들어갔다.  

 

대한민국은 폐허 위에서 산업화를 이루었고,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제도가 발전한 만큼 정치에 대한 믿음도 깊어진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삿대질과 고성이 오가는 장면이 되풀이될 때마다, 정치에 대한 믿음도 조금씩 무너졌다. 나 역시 정치 뉴스를 보다가 화면을 꺼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도 전에, 서로를 향한 비난과 고성을 듣는 일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면을 끈다고 해서 정치가 내 삶에서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적 불안과 세대 갈등, 정치적 분열, 급변하는 국제 질서라는 거센 파도 앞에 외롭게 서 있다. 그러나 정치는 이 파도를 헤쳐갈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진영 간 대립에 갇혀 있는 듯하다. 갈등을 풀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다음 세대의 미래보다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지도자의 빈자리를 실감한다. 국민이 기다리는 것은 화려한 언변이나 세련된 이미지가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무엇을 지키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책임 있는 리더십이다.

 

그러나 그런 지도자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도자는 결국 국민의 선택과 감시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말에 환호하고, 어떤 잘못에 분노하며, 누구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는지가 정치의 얼굴을 만든다. 등대도 불을 켜고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제 역할을 하듯, 민주주의도 깨어 있는 국민의 관심과 책임 있는 선택이 있을 때 길을 잃지 않고 비로소 올곧은 길을 갈 수 있다. 

 

정치 뉴스를 끈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검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을 껐다고 우리가 살아갈 현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등대는 배를 대신해 바다를 건너 주지 않는다. 대신 거센 파도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길을 비춰준다. 정치도 국민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기 몫의 삶을 안심하고 이어가도록 공동체의 방향을 밝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등댓불은 저절로 타오르지 않는다. 누구를 선택하고, 그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끝까지 지켜보며 책임을 묻는 일은 국민의 몫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불빛을 기다리는 승객이 아니라, 그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그 불빛을 맡겨야 하는가.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이 아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 곁에서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갈등 앞에서는 어느 한쪽의 승리보다 공동체가 함께 나아갈 길을 찾으며, 당장의 인기보다 다음 세대의 내일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등대의 가치는 높이에 있지 않다. 가장 어두운 밤과 거센 파도 속에서도 불을 끄지 않고 길을 밝히는 데 있다.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가 아니라, 나라가 흔들릴 때 누구의 곁을 지켰으며 어느 방향을 밝혀주었는가로 기억되어야 한다. 국민이 기다리는 것은 자신만을 비추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앞날을 밝히는 지도자다. 그 불빛이 다시 선명해질 때, 이 나라도 비로소 거센 폭풍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윤배]

(현)조선대 AI·SW 학부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

 

작성 2026.09.22 11:08 수정 2026.09.22 11:12

RSS피드 기사제공처 : 코스미안뉴스 / 등록기자: 한별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