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쓰촨성 3대 명산 트레킹 <3부> 당령설산

여계봉 대기자

 

오늘은 당령설산(党岭雪山, 5,476m)을 트레킹하기 위해 단바(丹巴)를 출발하여 쓰촨성의 서북 방향으로 달린다. 이동하는 도로는 곳곳이 공사 중이다. 새롭게 길을 내거나 확장하는 것도 있지만 이 지역이 워낙 험준하다 보니 산사태가 자주 일어나서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우리가 가는 지역이 워낙 오지이다 보니 앞서 다녀온 야라설산으로 가는 길보다 도로가 훨씬 좁고 거칠며 정비가 덜 되어 있는 편이다. 

 

험준한 산악지대의 고산은 깎아지른 절벽의 좁고 험한 외길이 계속 이어진다. 하늘과 맞닿는 산 정상에 소복이 쌓인 만년설, 굴러떨어질 것만 같은 무채색의 괴암, 산기슭의 푸른 나무 등 비슷비슷한 풍경이 한참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진다. 높은 구불구불한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데 가운데 도로를 점령한 소들은 목동 없이도 알아서 제 갈 길을 간다. 협곡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빙하수는 낮은 지대로 내려오면서 하천 폭을 늘려간다. 차가 달리는 도로 외에는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원시 자연의 아름답고 기묘한 경이로움이 절로 느껴진다. 

 

 단바에서 당령촌으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끝없이 스치어 보이는 순백의 설산과 코발트 빛 하천은 순수한 원초적 아름다움으로 인간을 매혹한다. 이 거친 협곡 속에서 사람들은 투박하고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간다. 순박하고 깨끗한 대자연과 여기에 몸 붙이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에게 팍팍한 일상의 생채기를 치유하고 마음에 평안한 안식을 불어넣는다.

 

히말라야산맥이 거대한 울타리를 이룬 동티베트의 해발 3,000∼6,000m 고산(高山)과 고원(高原)을 바라보며 당령촌을 향해 구불구불한 향도(鄕道)를 따라 달리는데, 길가 여기저기 쌓여있는 조그마한 돌탑들이 삭막한 풍경에 생기를 넣어준다. 거친 빙하수가 흐르는 계곡에도 안녕과 번영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위에 글을 새겨 넣은 마니석(摩尼石)들이 자주 보여 마음속에 고요한 울림을 준다. 당령촌에 가까워지자 한쪽은 낭떠러지, 반대쪽은 절벽인 비포장도로가 나오는데, 산 중턱에 구름과 안개가 걸쳐져 있어 마치 신선의 세계로 들어선 기분이다.

 

당령설산 트레킹의 출발지 당령촌

 

단바를 출발한 지 2시간 30분 만에 당령촌(党岭村, 3,180m)에 도착한다. 이 마을은 쓰촨성 간쯔의 헝단산맥 설산에 둘러싸인 해발 3,100m에 자리잡은 원시적이고 신비로운 곳이다. 수십 가구의 전통적인 티베트식 석조 가옥 지붕 위에는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인다. 집들은 산비탈을 따라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는데 뒤에는 설산이, 앞에는 계곡이 펼쳐있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당령설산이 아직까지 잘 알려져있지 않은 탓인지 산행 기점인 당령촌은 여느 시골 산간 마을처럼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다. 심산오지 막다른 골짜기에서 만난 외지인들을 보고 미소를 지어주는 당량촌 장족 여인의 오색 색실로 수놓은 검정 두건이 참 곱게 느껴진다. 당령설산 트레킹은 당령촌에서 출발하여 비기평(飞机坪 3,750m)을 지나 정상 아래에 있는 산상호수인 호로해(葫芦海 4,100m) 호수까지 왕복으로 진행하는데, 총 11km의 거리를 7시간 정도 걷게 된다. 

 

쓰촨성 3대 명산 트레킹 코스

 

당령설산은 대자연의 웅장한 설산으로 사계절 풍경이 아름다우며 경치가 수려하다. 5,000m급 설산 28개가 연봉을 이루는데, 그중에서 '샤치앙라(夏羌拉, 5476m)'가 주봉이다. 봄에는 하얀 설봉과 푸른 초지로 아름답고, 여름에는 만년설봉과 야생화가 만발한다. 가을에는 당령설산의 단풍이 노랗게 물들어 더욱 황홀하고, 겨울에는 온천지가 눈꽃 세상이 된다. 아직까지 당령설산은 원시 상태의 자연 그대로 남아 있어 근래에 트레킹 지역으로 각광 받고 있다.

 

당령촌을 출발하자 울창한 삼나무 숲이 나타나고,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산길이 시작된다. 마을을 벗어나자 마자 독특하고 낯선 건물 하나가 눈길을 끈다. 보통 가옥보다 두세 배는 더 높은 건물, 바로 조루(碉楼)다. 조루는 벽돌과 진흙으로 쌓았는데 크기와 높이가 좀 다르지만 30m에 이르기도 한다. 조루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든 티베트족이 외부인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망루인데 곡식을 저장하는 공간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현재 단바현에 남아 있는 160여 개의 조루는 이제 이 땅의 위험이 아닌 아름다움을 알리는 전망대로 활용되고 있다. 

 

망루이자 곡식 저장고 역할을 하는 조루

 

고도가 갑자기 높아지니 여기저기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오르는 길은 목가적인 풍경의 때 묻지 않은 원시 자연생태계다. 사람 손을 덜 탄 원시림과 산허리 능선 사이로 난 임도는 풀을 뜯기 위해 다니는 말과 야크 떼의 이동로다. 오늘 말과 야크는 보이지 않고 산오름하는 우리 일행과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가는 중국인 관광객들만 눈에 띈다. 두 발로 산을 오르는 우리는 고소에 적응하기 위해 작은 보폭으로 천천히 걷는다. 저 멀리 구름옷을 두른 당령설산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시원한 계곡 물소리에 발맞추며 걷다 보니 어느덧 형형색색의 들꽃들로 가득한 넓디넓은 대초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해발 3,800m의 드넓은 평원 비기평(飞机坪)

 

해발 3,800m의 드넓은 평원인 비기평(飞机坪)은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평평한 땅'이라는 뜻으로, 여느 고산의 황량한 풍경과는 달리 아기자기한 꽃밭, 초원을 노니는 말과 야크 등 평화로운 경치가 가득하다. 깊은 골짜기 속 활주로 같은 넓은 평원 지대여서 영국 출신 소설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비행기의 불시착 지점이라는 설에서 여기가 '샹그릴라'의 실제 배경지일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초원에 있는 목장의 게르에서 야크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를 맛보며 하룻밤 쉬어갈 수도 있어 여행자들에게는 이곳이 꿈의 낙원, 바로 샹그릴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자들의 '샹그릴라' 비기평 초원

 

말 그대로 푸른 산상 호수를 찾아가는 길옆은 죄다 초원이다. 푸른 초원에 야크 떼가 점점이 박혀서 풀을 뜯고 있는 평화롭고 한가한 풍경이다. 신발도 신지 않은 어린 소녀 목동이 작대기 하나만 달랑 들고 야크 떼를 몰고 간다. 동티베트는 푸른 초원에 풍부한 물이 흐르고 있어 야크와 양, 소를 기르는 유목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야크는 긴 털을 가진 소의 일종으로 가축화된 고산동물이다. 몽골과 티베트를 중심으로 해발 4,000∼6,000m에 이르는 고원에 분포한다. 티베트에 자주 왔지만 이 지역에서 야크를 많이 키우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처럼 야크 고기를 자주 먹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초원에서 만난 맨발의 어린 소녀 목동

 

초원이 끝나는 곳에 있는 매표소에 입장료를 내고 소나무 원시림으로 들어서자 다시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비기평 마을에서 따라나선 강아지도 힘이 드는지 쉬었다 가자고 바지와 신발을 입으로 잡아당긴다. 당령촌에서부터 돈을 받고 중국 관광객들을 태운 오토바이들은 힘들게 오르고 있는 우리 곁을 지나면서 먼지만 남겨주고 야속하게 산 위로 달려간다. 전망이 트인 임도 중간에 멈춰서서 지나온 비기평을 바라보는데 그야말로 절경이다. 강아지도 한참 동안 자기 동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출발할 때 멀리 보이던 설산들이 가깝게 보인다. 소나무 송진 향기가 짙은 원시림 속에서 부드러운 낙엽을 밟으며 야생의 원시성에 듬뿍 취하다 보니 오늘 트레킹이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기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비기평의 강아지

 

비기평 마을에서 1시간 이상 산오름 끝에 드디어 오토바이들이 모여 있는 임도 끝에 도착한다. 당령촌에서 여기까지 오토바이가 운행되고 여기서부터는 모두 걸어서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오늘이 평일인데도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들이 계속해서 임도를 오고 가고 있다. 오토바이 기사에게 요금을 물어보니 왕복은 300위안, 내려가는 편도는 100위안이라고 한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호흡을 고른 후 산길로 접어든다. 약 10 여분 올라가니 간해자(干海子, 4,000m)가 나온다. 간해자는 호로해 바로 아래에 있는 물이 거의 없는 늪지대인데, 주변의 나무들과 어울려 독특한 풍경을 펼친다. 현지인들은 빙하 호수를 "해자(海子)”라고 부른다. 간해자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호로해 호수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 목적지인 산상 호수 호로해(4,160m)

 

타루초가 휘날리는 호수에 오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거울같이 맑은 산상 호수가 눈 앞에 펼쳐지고, 뭉게구름의 코발트색 하늘과 웅대한 설산 봉우리들이 저만치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빙하가 녹으면서 만들어진 호수, 호로해(葫芦海, 4,160m)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호리병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호수 주변에는 여러 가지 나무와 희귀식물들이 호수와 어울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신성하고도 영롱한 호수와 주위로 펼쳐진 당령설산의 절경에 일행은 한참 동안 바라만 보고 있다. 

 

호숫가에 쌓은 무수한 작은 돌탑

 

당령설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호수이다. 호로해, 주용초 등 하나하나의 고산 호수가 계곡에 박혀 있고, 호수물은 청록색으로 땅에 떨어진 비취처럼 빛난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호로해에 바람이 부니 설산들이 호수 안에서 흔들리는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호수 정면으로 보이는 광활한 설산들이 당령설산인데, 그중에서도 오른쪽 제일 높은 봉우리가 주봉인 '샤치앙라(5,470m)'다. 주변으로 만년설이 뒤덮인 5,000m이상의 고산준봉 28개가 샤치앙라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설산 아래에는 30여 개의 크고 작은 고산 호수가 설산의 품에 안겨 있다. 

 

호수 표지판 아래에서 깊은 오수에 빠진 강아지

 

함께 한 가이드가 10월과 11월에는 호수 주위 나무들이 노랗고 붉게 변해 온 계곡이 금빛으로 물들면, 해자 주변 나무들이 호수에 비치며 호수가 온통 금빛으로 변해 멋진 장관을 연출하는데, 이 시기에 관광객들이 여기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호수를 천천히 돌아보기로 하고 호숫가 옆으로 난 산길로 접어든다. 호수 기슭을 돌아서면 절경이고 가까이 가면 감탄이어라. 타르초가 길게 쳐진 높은 언덕에 오르니 호수 안으로 푸른 빙하 호수들이 보인다. 여기는 순백의 설산에 명경지수(明鏡止水)요, 산, 물, 공기, 눈, 구름 등 모든 것이 티끌 하나 섞이지 않은 순도 100%의 청정지대다. 이곳에 서니 세속에 찌든 마음이 순간 맑아지는 것 같다. 고개를 들면 바라보이는 고봉 샤치앙라와 그 아래 해발 4,160m에 자리한 하늘 아래 첫 빙하 호수가 자아내는 풍경이 꿈속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설산의 오른쪽 끝이 당령설산의 주봉인 샤치앙라(5,470m)

 

호숫가 풀밭에서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호로해와 작별할 시간이다. 호수를 내려서서 임도에서 뒤를 돌아보니 고산 준봉에 걸쳐 있는 구름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있고, 그 너머로 당령설산이 하얀 머리만 내밀고 우릴 내려다보고 있다. 임도를 내려오면서 전망이 트인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비기평의 대초원에 야크 떼는 한가롭게 쉬고 있고, 초원 너머 멀리 보이는 구름 아래 설산들은 오수에 젖은 듯 말이 없다. 저 설산 하늘 아래 그 어디에서 쓰구냥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하산 길의 임도에서 내려다본 비기평 대초원

 

호젓한 산길에 룽따(風馬)가 서 있다. 장족 할아버지가 룽따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마니차를 돌리며 불경을 암송하고 있다. 룽따는 오색 빛깔이 나는 천에다 부처의 가르침을 적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에 길게 깃발로 걸어둔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깃발의 퍼덕이는 소리가 달리는 말발굽 소리와 비슷해 '바람(風)의 말(馬)'이라고 부른다. 육자진언을 하나씩 헤아리듯 할아버지는 한참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상을 향한 염원은 종교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남녀노소 똑같은가 보다.

 

마을 가까이에 오자 이정표가 하나 서 있다. 이정표에 적힌 지명들이 마치 전생과 후생을 가리키는 방향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서로 관통하는 앞뒤 같은 인(因)과 연(緣)과 과(果)의 연속이다. 지금 동티베트에 있는 내 생도 나의 전생이며 후생이 아닐까.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6.09.22 09:24 수정 2026.09.2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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