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천 원짜리 한 장이면 간식 하나쯤은 부담 없이 살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음료를 고르고, 문구점에서 필요한 학용품을 사고, 시장에서는 간단한 먹거리를 손에 들 수 있었다. ‘천 원’은 우리 생활에서 가장 부담 없이 꺼낼 수 있는 소비의 단위였다. 그러나 고물가가 장기화하면서 이러한 풍경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생활 주변에서 천 원 안팎에 살 수 있었던 상품들이 하나둘 가격대를 높이면서 소비자들은 “이제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제품도 용량이나 수량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어 소비자가 체감하는 부담은 더욱 크다.
저가 상품의 위기는 단순히 몇백 원이 오르는 문제가 아니다. 1000원짜리 제품이 1200원으로 오르면 금액으로는 200원이지만 상승률은 20%다. 1만 원짜리 상품이 같은 200원 오르는 것과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충격은 전혀 다르다. 특히 저가 상품을 자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작은 가격 인상이 반복되면 한 달 생활비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가 발생한다.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원재료비와 인건비, 임대료, 전기·가스요금, 포장비, 물류비 등 여러 비용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과자나 빵처럼 밀가루·설탕·유지류 등이 필요한 식품은 국제 원재료 가격과 환율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제조부터 유통까지 들어가는 인건비와 운송비 역시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저가 상품일수록 이러한 비용 상승을 흡수할 여지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고가 상품은 상대적으로 가격에 포함된 마진이나 비용 구조를 조정할 여지가 있지만, 처음부터 낮은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운 상품은 생산비가 조금만 올라도 기존 판매가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여기에 소비자의 절약 심리가 더해지고 있다. 물가 부담이 커질수록 소비자는 중·고가 상품보다 저렴한 제품을 찾는다. 대형마트 자체브랜드(PB), 균일가 상품, 할인상품, 편의점 행사상품 등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가 동시에 저가 상품으로 이동하고 공급비용까지 상승하면 ‘싼 상품을 찾아 절약한다’는 기존 소비 공식도 흔들릴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칩플레이션(Cheapflation)’과도 연결된다. 칩플레이션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상품의 가격이 고가 상품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저소득층이나 생활비 절약이 필요한 가구일수록 저가 상품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칩플레이션은 단순한 물가 문제가 아니라 ‘물가 불평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소비자에게 더 민감한 것은 생활필수품이다. 과자나 음료는 소비를 줄일 수 있지만 식재료, 세제, 휴지, 위생용품처럼 일상생활에 필요한 제품은 구매를 무한정 미룰 수 없다. 하나하나의 가격 상승은 작아 보여도 장바구니 전체로 합치면 부담은 크게 느껴진다.
가격을 올리는 대신 제품의 크기나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도 소비자의 체감물가를 높인다. 포장과 가격이 비슷해 이전과 같은 제품처럼 보이지만 내용물이 줄었다면 단위당 가격은 사실상 오른 셈이다. 소비자가 이제 판매가격뿐 아니라 중량과 개수, 100g당 가격 등을 함께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천 원의 실종’은 소상공인에게도 고민거리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웠던 음식점이나 길거리 간식 판매점은 원재료와 인건비가 오르더라도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 가격을 올리면 고객이 줄어들까 걱정되고, 그대로 유지하면 수익성이 악화된다. 결국 양을 줄이거나 메뉴를 변경하고, 판매가격을 조정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소비문화 역시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몇백 원 정도의 차이는 크게 비교하지 않았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격을 확인하고 쿠폰과 포인트, 묶음 할인까지 계산한다. ‘얼마나 좋은 상품인가’뿐 아니라 ‘같은 돈으로 얼마나 많이 살 수 있는가’가 구매 결정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정부와 유통업계 역시 생활물가를 바라보는 시각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한다고 해도 국민이 자주 구매하는 저가 식품과 생필품 가격이 높은 수준에 머물면 체감경기가 좋아졌다고 느끼기 어렵다. 특히 저소득층과 고령층, 1인 가구처럼 필수생활비 부담이 큰 계층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천 원짜리 상품은 단순히 ‘싼 물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생에게는 부담 없는 간식이었고, 직장인에게는 작은 소비였으며, 서민에게는 생활비를 아낄 수 있는 선택지였다. 그래서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줄어드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구매력 변화를 보여주는 작은 경제지표라고 할 수 있다.
“천 원으로 무엇을 살 수 있을까.” 과거에는 쉽게 답할 수 있었던 질문이 이제는 쉽지 않다. 천 원짜리 상품의 퇴장은 작은 가격표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물가가 우리의 일상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생활물가의 진짜 모습은 거대한 경제지표보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꺼내 드는 천 원짜리 한 장의 구매력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