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계로 일을 시작했지만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서로 기억하는 약속이 달랐다. 누가 어디까지 맡기로 했는지, 결과물은 무엇인지, 추가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지, 중요한 결정은 누가 내리는지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외주업체나 협력사, 동업자와 함께 사업할 때는 관계를 믿는 것과 별개로 역할·산출물·돈·의사결정·책임·종료 조건을 먼저 문서로 정할 필요가 있다.
시작할 때는 같은 생각이라고 믿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긴다. 디자인과 개발, 마케팅처럼 전문적인 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기기도 하고, 다른 회사와 공동으로 상품을 만들거나 판매하기도 한다. 서로의 장점을 합쳐 사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동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관계가 좋다. 서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고 사업도 잘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세부 조건을 하나씩 확인하는 일이 오히려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정도는 서로 알아서 하면 되겠지.”
“우리가 오래 알고 지냈는데 굳이 이런 것까지 써야 할까.”
“일단 시작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정하자.”
이렇게 일을 시작하면 초반에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돈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던 질문이 하나씩 나타난다.
누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결과물은 정확히 무엇인가.
추가 작업이 생기면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예상보다 매출이 적으면 손실은 어떻게 나누는가.
중요한 결정을 두 사람이 다르게 생각하면 누가 최종 판단하는가.
사업을 그만두고 싶을 때는 어떻게 정리하는가.
좋은 관계가 이런 질문의 답을 자동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같은 약속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면 한쪽이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처음부터 약속의 내용이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외주업체에 “홈페이지 제작 전체를 맡긴다”고 했다고 가정해보자. 의뢰한 회사는 디자인과 개발, 문구 수정, 사진 등록과 공개 이후의 오류 수정까지 모두 포함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외주업체는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처음 합의한 화면 디자인과 개발까지만 계약 범위이고, 추가 문구 작성이나 사진 보정, 공개 이후의 기능 변경은 별도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양쪽 모두 자신이 이해한 내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생긴 뒤에는 대화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동업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은 영업을 맡고 다른 사람은 제품 개발을 맡기로 했다고 해도 ‘영업을 맡는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규 거래처를 찾는 일만 하는지, 기존 고객관리와 대금 회수까지 책임지는지에 따라 업무 범위가 달라진다.
결국 문제는 상대방을 믿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뜻이라고 생각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데서 시작될 수 있다.
함께 일하기 전 여섯 가지를 정한다
외주·협력·동업의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기본 질문은 비슷하다.
최소한 여섯 가지를 정리할 수 있다.
역할, 산출물, 돈, 의사결정, 책임, 종료 조건이다.
이 여섯 항목을 먼저 적으면 실제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전문가에게 검토를 요청할 때도 무엇을 합의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첫째, 역할…누가 어디까지 맡는가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은 각자의 역할이다.
“마케팅 담당”, “영업 담당”, “개발 담당”처럼 업무 이름만 정해서는 실제 책임 범위를 알기 어렵다. 어디에서 업무를 시작해 어디까지 끝내는지, 상대방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까지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외주업체에 홍보 업무를 맡긴다고 해도 콘텐츠 제작만 하는지, 광고 집행과 고객 문의 대응까지 포함하는지는 전혀 다른 계약이다.
협력사가 제품을 공급한다면 생산까지만 책임지는지, 포장과 배송까지 맡는지에 따라 업무와 비용이 달라진다.
동업에서는 더 구체적인 구분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영업을 맡고 다른 사람이 운영을 맡더라도 계약 체결과 비용 승인, 직원 채용처럼 두 영역에 걸쳐 있는 결정은 누가 담당할지 따로 정해야 한다.
역할을 정한다는 것은 일을 나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내 일이고 어디부터 상대방의 일인지 경계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둘째, 산출물…무엇이 나오면 일이 끝난 것인가
외주 계약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결과물의 범위다.
“디자인을 완성한다.”
“영상을 제작한다.”
“홈페이지를 만든다.”
이 정도로만 정하면 일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완료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홈페이지라면 몇 개 화면을 만드는지, 모바일 화면까지 포함하는지, 원본 파일을 제공하는지, 수정은 몇 차례 가능한지 등을 정해야 할 수 있다.
영상이라면 최종 영상만 받는지, 촬영 원본과 편집 프로젝트 파일도 받는지에 따라 계약이 끝난 뒤 활용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납품 형식과 완료 시점도 중요하다.
결과물을 무엇으로 인정할지 정하지 않으면 의뢰인은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수행자는 이미 계약한 업무를 모두 마쳤다고 판단할 수 있다.
산출물은 단순히 “무엇을 만든다”가 아니라 무엇을 어떤 상태로 언제까지 넘겨야 완료되는가까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돈…얼마를 언제 어떤 조건으로 지급하는가
돈에 관한 약속은 금액만 정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언제 지급할지, 어떤 단계가 끝나야 다음 대금을 지급할지 정해야 한다.
업무 범위가 늘어나면 추가 비용을 어떻게 결정할지도 필요하다.
처음에는 간단한 수정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반복되면서 업무량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이때 추가 작업의 범위와 비용 기준이 없다면 의뢰인은 기존 계약에 포함된 업무라고 생각하고, 수행자는 추가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
협력사업이나 동업에서는 수익뿐 아니라 비용과 손실도 함께 봐야 한다.
매출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정했더라도 광고비와 인건비, 물류비, 환불 비용 등을 먼저 차감할 것인지에 따라 실제로 나누는 금액은 달라진다.
따라서 ‘수익을 절반씩 나눈다’는 문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수입을 기준으로 하고 어떤 비용을 먼저 반영할지까지 정해야 실제 정산 기준을 맞출 수 있다.
넷째, 의사결정…의견이 다를 때 누가 결정하는가
사업을 시작할 때는 의견이 잘 맞는다.
문제는 중요한 선택에서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때다.
제품 가격을 낮출 것인지, 광고비를 더 쓸 것인지, 새로운 직원을 뽑을 것인지, 거래처의 조건을 받아들일 것인지에서 의견이 갈릴 수 있다.
모든 결정을 만장일치로 하기로 하면 한 사람이 반대할 때 사업이 멈출 수 있다. 반대로 한 사람에게 모든 결정권을 주면 다른 참여자가 자신의 책임에 비해 권한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일상적인 운영 결정과 중요한 경영 결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각자 맡은 영역에서는 담당자가 판단하되 일정 금액 이상의 지출이나 계약, 차입, 신규 투자처럼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은 공동으로 결정하도록 정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방식을 모든 회사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의견이 다를 때 어떤 절차로 결론을 낼 것인지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합의하는 것이다.
다섯째, 책임…문제가 생기면 누가 무엇을 부담하는가
일이 잘될 때는 책임의 경계를 생각할 일이 많지 않다.
그러나 납기가 늦어지거나 고객에게 손해가 발생하고, 추가 비용이 생기면 책임 문제가 바로 나타난다.
외주업체가 약속한 일정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떻게 처리할지, 의뢰인이 필요한 자료를 늦게 제공해 일정이 밀렸다면 책임을 어떻게 볼지 정할 필요가 있다.
협력사업에서는 제품 불량이나 배송 문제, 고객 환불처럼 여러 회사가 연결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동업에서는 한 사람의 결정으로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발생했을 때 누가 부담할 것인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모든 위험을 미리 예상할 수는 없다.
다만 각자가 책임져야 하는 업무 범위와 문제가 생겼을 때 알리고 협의하는 절차는 정해둘 수 있다.
책임을 문서로 정하는 이유는 문제가 생기기 전에 상대방을 의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처음부터 다시 협상하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서다.
여섯째, 종료 조건…잘 시작하는 것만큼 잘 끝내는 방법도 정한다
함께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 끝내는 방법이다.
좋은 관계로 시작하면서 계약 종료나 동업 해지를 먼저 말하면 상대를 믿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업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사업 방향이 달라질 수 있고 한쪽이 더 이상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예상했던 매출이 나오지 않거나 서로 다른 사업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때 종료 조건이 없다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결정 자체가 새로운 분쟁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외주 계약이라면 어느 상황에서 계약을 종료할 수 있는지, 종료 시점까지 만든 결과물과 지급한 비용을 어떻게 정리할지 확인해야 한다.
협력사업에서는 남아 있는 재고와 고객 주문, 미수금과 비용을 누가 처리할지도 문제가 된다.
동업이라면 지분과 회사 자산, 진행 중인 계약, 채무 등을 어떻게 정리할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따라서 시작할 때부터 종료 가능성을 실패로 볼 필요는 없다.
관계가 끝날 때 무엇을 어떻게 정리할지를 미리 합의하는 것도 사업을 시작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다.
계약서는 좋은 관계를 깨는 문서가 아니다
친한 사람과 일할수록 계약서를 작성하자는 말을 꺼내기 어려울 수 있다.
“나를 못 믿는 것인가.”
“우리 사이에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반응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약의 목적을 상대방을 의심하는 데만 두면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 자체가 불편해진다.
계약서는 서로 다르게 기억할 수 있는 내용을 같은 문장으로 확인하는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좋은 관계일 때 역할과 비용, 결과물과 종료 조건을 정리해두면 오히려 문제가 생겼을 때 감정적인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처음 합의한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구두 합의가 항상 의미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사업에서는 시간이 지나고 참여자가 늘어나며 금액과 책임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조건을 문서로 남기는 편이 확인하기 쉽다.
특히 동업과 투자처럼 지분과 회사의 의사결정권, 장기적인 재무 책임이 연결되는 관계는 단순한 업무 외주보다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다.
실제 계약서의 법적 효력과 조항은 거래 형태와 사업 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중요한 계약은 전문가의 검토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외주와 동업을 같은 계약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외주업체와 동업자는 모두 회사 밖의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관계의 구조는 다르다.
외주는 일반적으로 정해진 업무와 결과물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지급하는 관계에 가깝다.
협력사업은 서로 다른 회사가 각자의 역할을 맡아 공동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동업은 사업의 손익과 의사결정, 자산과 책임을 장기간 함께 나누는 구조가 될 수 있다.
투자 역시 단순히 돈을 빌리는 관계와 같지 않다. 투자 방식과 계약에 따라 지분이나 의사결정권, 향후 자금조달 조건 등이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함께 사업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계약 양식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관계가 무엇인지 먼저 구분한 뒤 그 관계에서 필요한 역할과 권한, 돈과 책임을 정해야 한다.
정산표 하나만 있어도 기억의 차이를 줄일 수 있다
협력관계에서는 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실제 운영 과정에서 새로운 비용과 수입이 계속 발생한다.
처음에는 합의하지 않았던 광고비가 들어가고, 배송비가 예상보다 늘거나 추가 작업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비용이 발생할 때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면 프로젝트가 끝난 뒤 정산 과정에서 다시 기억에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공동사업이나 협력 프로젝트에서는 간단한 정산표를 함께 관리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항목 | 확인할 내용 |
|---|---|
수입 | 어떤 거래에서 얼마가 발생했는가 |
비용 |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얼마를 지출했는가 |
부담 주체 | 어느 쪽이 부담하기로 한 비용인가 |
증빙 | 세금계산서·영수증 등 확인 자료가 있는가 |
지급 상태 | 지급·미지급·정산 예정 가운데 어느 상태인가 |
최종 정산 |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 |
정산표의 목적은 회계장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당사자가 같은 숫자를 보면서 비용과 지급 상태를 확인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금액이 커지거나 세금·회계 처리가 필요한 거래라면 실제 처리 방법은 회계·세무 전문가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함께 사업하기 전 한 장에 여섯 가지를 적어본다
외주나 협력, 동업을 검토할 때 처음부터 완벽한 계약서를 직접 만들 필요는 없다.
먼저 대표와 상대방이 합의해야 할 내용을 한 장에 적어보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구분 | 시작 전에 확인할 질문 |
|---|---|
역할 | 누가 무엇을 어디까지 담당하는가 |
산출물 | 무엇을 어떤 상태로 언제까지 완료하는가 |
돈 | 얼마를 언제 지급하고 수입·비용은 어떻게 나누는가 |
의사결정 | 의견이 다르면 누가 어떤 절차로 결정하는가 |
책임 | 지연·손실·문제가 생기면 누가 무엇을 처리하는가 |
종료 조건 | 관계를 끝낼 때 돈·자료·업무를 어떻게 정리하는가 |
이 여섯 가지를 서로 설명해보고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대답이 모호한 항목이 있다면 일을 시작한 뒤에도 같은 문제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그때 가서 정하자”, “서로 알아서 하자”, “문제 생기면 이야기하자”는 답변이 반복되는 항목은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한 부분일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한 한 장은 계약서를 대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무엇을 합의해야 하는지 빠뜨리지 않도록 확인하는 준비자료에 가깝다. 외주라면 산출물과 수정 범위, 납기와 대금 지급 조건을 더 구체화할 수 있고, 동업이라면 지분과 의사결정권, 자금 투입과 손실 부담, 관계 종료 뒤 정산 문제까지 추가로 검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