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미국의 약 3배에 달하며, 210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1명당 노인 2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한국은행과 유럽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동 주최한 ‘인구 고령화와 장수의 경제학: 도전에서 기회로’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다. 고령화가 경제 성장과 재정, 통화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이번 연구는 빠른 인구 고령화가 한국 경제에 미칠 중장기적 부담을 조명했다.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 명예교수인 후미오 하야시는 일본의 장기 침체가 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선진국 중 고령화가 약 30년 먼저 시작돼 경제 성장 둔화 현상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하야시 교수는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미국보다 세 배 가량 빠르며, 홍콩 다음으로 가파른 속도를 보이고 있어 일본과 유사한 성장 둔화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연구팀은 출산율과 기대수명이 1991년 수준에 머물렀다면 2024년 균형 실질금리(경제가 완전 고용 상태에 있을 때의 적정 금리)가 현재보다 약 1.4%포인트 높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즉, 고령화가 경제의 적정 금리 수준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해 통화정책의 운신 폭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고령화가 2025년부터 2070년까지 연평균 0.15%포인트의 물가상승률 하락을 유발해 금융시장 안정성에도 부담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부동산 대출 비중이 높은 금융기관에서 충격이 더 컸다.
연구진은 출산율 회복, 고령층 고용 확대, 생산성 향상 등 구조 개혁이 진행될 경우 통화정책의 운신 폭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구조 개혁이 이뤄지면 2025~2070년 기간 실질금리와 성장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연평균 약 1%포인트 높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후발 고령국인 한국은 재정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짧아 부담이 크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셀라하틴 임로호로글루 교수는 “한국과 중국 등은 고령화가 늦게 시작됐지만, 짧은 기간에 급격한 재정 조정을 감당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성장 여력도 약화된다”고 말했다. 유엔의 저위 인구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2100년 한국의 노년부양비는 생산연령인구 1명당 노인이 2명에 달하는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할 수 있는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부양해야 할 고령 인구는 급증하는 구조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의 노년부양비 수준을 유지하려면 정년을 20~25년 이상 연장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정년 연장만으로는 부양 부담 해소가 어렵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노년부양비 증가 속도와 정년 상향 폭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뚜렷하지만, 성장 둔화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재정 압력과 성장 압력이 서로 다른 경로로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구구조 변화가 극단적 수준에 이르기 전에 연금과 정년 제도를 조정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처럼 인구 변화에 따라 연금 급여를 자동 조정하는 시스템 도입도 가능하다고 봤다. 조정 시기가 늦어질수록 연금 급여와 기여율, 정년 등에서 더 큰 폭의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의 빠른 고령화는 경제 성장, 재정 안정, 금융시장 안정성에 복합적인 도전을 던지고 있다. 앞으로 정부와 정책 당국이 출산율 제고, 고령층 고용 확대, 생산성 향상 등 사회·경제적 구조 개혁을 통해 대응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통화정책과 재정 정책의 운신 폭을 확보하고 고령화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