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자유가 사라졌던 바다의 출발점, 오늘날 화해와 기억의 공간으로
세네갈 다카르 앞바다의 작은 섬 고레(Gorée).
푸른 대서양과 아름다운 건축물이 어우러진 이 섬은 오늘날 세네갈을 대표하는 역사·문화유산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인 대서양 노예무역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고레섬은 다카르에서 약 3.5㎞ 떨어진 작은 섬으로,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진출과 무역 경쟁 속에서 중요한 항구이자 교역 거점으로 이용됐다.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영국·프랑스 등이 차례로 섬을 지배했다. UNESCO는 고레섬을 15~19세기 아프리카 해안의 주요 노예무역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고 있으며, 197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쇠사슬에 묶여 대서양을 건넌 사람들
유럽의 식민지 확대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내졌다. 이른바 대서양 노예무역이었다.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은 가족과 고향을 강제로 떠나야 했으며, 장기간의 이동 과정에서 폭력과 굶주림, 질병 등에 노출됐다. 대서양을 건너는 항해에서는 좁은 선박 내부에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조건으로 수용됐다.
UNESCO는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1,250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아메리카로 강제 이송된 것으로 설명한다.
고레섬 역시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했다.
‘노예의 집’, 메종 데스클라브
고레섬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소는 ‘노예의 집(Maison des Esclaves)’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8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네갈 문화당국은 1776년 네덜란드인에 의해 건설된 건물로 설명하고 있다. 이후 이곳은 노예무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념공간이 됐다.
건물 내부에는 당시 사람들이 갇혀 있었던 공간을 보여주는 작은 방들이 남아 있다. 남성과 여성, 어린이 등을 구분한 공간과 대기 장소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건물 안쪽에는 고레섬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장소가 있다.
바로 ‘돌아오지 않는 문(Door of No Return)’이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이 문은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의 땅을 바라보고 배에 실려 대서양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상징한다. 오늘날 이곳은 노예무역의 비극을 기억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됐다.
그러나 고레섬의 역사에는 논쟁도 있다
고레섬을 설명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부분도 있다.
과거에는 고레섬이 아프리카에서 대서양 노예무역의 최대 중심지였으며 수많은 노예가 이곳을 거쳐갔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학 연구에서는 고레섬이 노예무역에서 차지했던 실제 규모가 과거의 설명보다 작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 노예제 기억재단 역시 현재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메종 데스클라브가 실제 노예무역에서 차지한 역할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고 설명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고레섬의 역사적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곳은 노예무역과 식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는 상징적인 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고레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 거래 규모’와 ‘역사적 기억의 상징성’을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197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고레섬은 1975년 세네갈의 역사기념물 목록에 등재됐으며, 1978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후 고레섬은 아프리카의 노예무역과 식민주의를 기억하는 국제적인 장소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이 섬에는 세계 각지에서 방문객이 찾아온다. 특히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에게 고레섬은 조상들의 역사를 돌아보고 자신들의 뿌리를 생각하는 순례의 장소이기도 하다.
UNESCO는 고레섬을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라 인간의 착취와 고통을 기억하고 화해와 대화를 생각하게 하는 장소로 평가한다.
기억해야 할 역사는 미래를 위한 교훈
고레섬의 좁은 골목과 오래된 건물, 바다를 향한 ‘돌아오지 않는 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게 자유와 존엄을 빼앗을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노예무역은 단순히 과거의 경제활동이 아니었다. 수많은 인간의 삶과 가족, 문화와 공동체를 파괴한 역사적 비극이었다.
그래서 고레섬은 오늘날 과거를 재현하는 관광지가 아니라 인권과 자유, 인종차별과 식민주의를 생각하는 교육의 장소로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다.
푸른 대서양을 바라보는 작은 섬 고레.
그곳에 남아 있는 ‘돌아오지 않는 문’은 과거에는 이별과 강제의 문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다시는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약속의 문이 되고 있다.
고레섬은 말없이 우리에게 역사를 기억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