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해도 어김없이 ‘K-방산 4대 강국 진입’을 국정 과제 앞자리에 올렸다. 그런데 그 화려한 수출 실적 뒤편에서, 방위사업청을 둘러싼 뇌물 수사가 업계 전체를 흔들고 있다.
4억 6천만 원짜리 사무관, 1조 7천억 원짜리 사업을 흔들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는 지난 20일 방위사업청 5급 공무원을 뇌물수수 혐의로, 뇌물을 건넨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LIG D&A) 임원을 뇌물공여 혐의로 각각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자금 세탁을 도운 하청업체 관계자 등 4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 공무원은 2021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총 915억 원 규모 6개 방위사업의 제안서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면서 LIG D&A 측에 유리한 점수를 몰아준 것으로 파악됐다. 그 대가로 현금 3억 2천만 원과 22억 원 상당의 하청업체 용역계약 체결 추천권을 받았고, 친인척 명의 업체를 동원한 허위 용역계약과 가짜 자문료, 차명계좌 등을 거쳐 자금을 세탁한 정황도 드러났다. 소개비 등을 모두 합쳐 실제로 받은 뇌물 규모는 총 4억 6천만 원에 이른다.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검찰은 부정 평가가 이뤄진 6개 사업 가운데 3개가, 지난해 12월 수주된 1조 7,775억 원 규모 ‘한국형 전자전기(Block-Ⅰ)’ 체계개발사업의 핵심 또는 관련 기술이었다고 판단했다. LIG D&A가 이 선행 기술을 발판 삼아 같은 분야 역대 최대 규모였던 대형 체계개발사업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해당 사업은 적의 통합방공체계와 무선지휘통제체계 등을 무력화하는 항공기를 2034년까지 개발해 실전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잠수함 사업까지 번진 비리 정황
수사망은 잠수함 전력에도 뻗어 있다. 검찰은 앞서 방사청 기반전력사업전력화지원관리팀 직원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한 바 있는데, 이 직원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장보고-Ⅱ(KSS-Ⅱ) 잠수함의 전술데이터링크(Link-22) 체계개발 등 무기체계 개발사업 입찰 과정에서 약 4억 6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수사기관은 이 직원이 금품을 받는 대가로 사업 관련 내부정보를 넘기고, 제안서 평가에서 특정 업체에 유리한 점수를 주는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기존 Link-11 전술데이터링크를 2028년까지 차세대 표준인 Link-22로 교체하는 238억 원 규모 사업으로, LIG D&A가 방사청과 계약을 맺어 진행 중이다.
방사청은 “개인 일탈”, 업체는 “혐의 부인”… 그사이 세미나까지
방사청은 이번 사건을 조직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일탈로 선을 긋고 있다. 방사청 대변인은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사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안서 평가 관련 제도 개선을 이미 진행 중이라고 밝혔고, 사업 중단 여부는 법령과 절차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LIG D&A 측도 혐의를 부인하며 관련 보도에 대한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LIG D&A는 충북 청주에서 국방부·방사청·공군 관계자 약 350명을 초청해 항공유도무기·항공전자 발전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연내 사업 공고가 예정된 장거리 공대공 유도탄 체계개발 사업의 수주 전략까지 상세히 발표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됐다. 방산 비리 의혹의 한복판에 선 기업이, 다음 대형 사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발주 기관 인사들 앞에서 수주 전략을 어필한 셈이다.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 LIG D&A는 관련 사업 자격 상실은 물론, 최대 3년간 정부 사업 참여가 제한되는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개인 일탈’로 봉합될 수 없는 이유
검찰은 이번 사건을 국가 안보와 핵심 산업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로 규정하며, 구조적·제도적 문제점을 유관기관과 공유해 유사 범행의 재발을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기관 스스로 이번 사건을 개인 비위를 넘어선 ‘구조적 문제’로 규정하고 나선 셈이다. 5급 사무관 한 명의 평가 권한이 조 단위 후속 사업의 향방까지 갈랐다는 사실은, 정성평가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소수 위원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심사 구조 자체가 비리의 온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임원 몇 명 구속기소, 사무관 파면, 청장의 유감 표명이라는 익숙한 3종 세트로 사건이 봉합되고 나면, 정작 그 구조는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은 채 그대로 남는다.
구조 개혁, 세 가지 실행 과제
첫째, 평가·심사 시스템을 통째로 갈아엎어야 한다. 평가위원 선정을 블라인드화하고, 정성평가 비중을 낮추며 산정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 소수 위원의 주관적 점수가 조 단위 사업의 향방을 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방사청의 순환보직 관행을 깨야 한다. 무기체계 획득 전문가 트랙을 신설하고, 민간 외부 검증단을 사업 단계마다 의무적으로 투입하는 상시 감시 체계를 법제화해야 한다. 셋째, 처벌과 보호의 비대칭을 바로잡아야 한다. 비리가 적발되면 기업의 존폐가 흔들릴 정도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내부고발자에 대한 포상과 신원 보호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K-방산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진짜 명품이 되려면, 무기의 성능만큼이나 그것을 만드는 과정의 청렴성이 담보돼야 한다. 검찰조차 구조적 문제를 지목한 지금, ‘개인 일탈’이라는 해명만으로 이 사건을 넘어갈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