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융합기술연구소장)
6·3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공약의 시간은 이제 시작됐다. 선거 기간 쏟아진 약속 가운데 무엇이 지역의 새 먹거리가 될 수 있고, 무엇이 또 하나의 구호로 끝날 것인지 따져봐야 할 때다. 특히 방위산업 공약은 그 무게가 다르다. 방산은 더 이상 국방 분야에 머무는 특수 산업이 아니다. 제조업, 첨단기술, 우주항공, 무인체계, 로봇, 에너지, 수출, 청년 일자리까지 함께 움직이는 지역경제의 복합 산업이 됐다.
이재명 정부도 K-방산을 국가 성장전략의 한 축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글로벌 방위산업 4대 강국을 목표로 방산수출 컨트롤타워 신설, 대통령 주재 방산수출진흥전략회의 정례화, 정책금융 재편, R&D 세제 지원, 방산 클러스터 확대를 내세웠다. 이는 지방정부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앞으로의 방산 정책은 중앙정부 예산을 따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력산업과 연구개발 역량을 방산과 어떻게 융합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여러 지역에서 방산과 항공우주, 드론, 로봇, 유·무인복합체계, 국방 인공지능, 군수정비, 시험평가 인프라를 앞세운 공약이 나왔다. 경남·창원은 기동·화력과 방산 제조 기반을, 대전은 국방 연구개발과 드론·센서 기술을, 경북·구미는 전자·통신·반도체 기반 유·무인복합체계를 내세울 수 있다. 사천·진주는 항공우주와 항공기 부품 생태계, 논산·계룡은 국방 행정과 교육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전남도 고흥 나로우주센터와 우주발사체 국가산단, 해안·항만, 에너지 인프라를 바탕으로 우주안보와 해양 무인체계, 국방 에너지 분야에서 차별화 가능성을 가진다. 문제는 이름이 아니라 실행 구조다.
방산 공약의 성패는 세 가지 질문에 달려 있다. 첫째, 그 지역에 이미 존재하는 산업 기반과 연결되는가. 둘째, 대기업 수주가 지역 중소기업과 청년 일자리로 흘러가는 구조가 있는가. 셋째, 당선자가 임기 안에 예산, 부지, 인허가, 인력양성, 시험평가, 판로 확보까지 책임질 실행체계를 만들 수 있는가. 이 세 가지가 빠진 방산 공약은 선거용 구호에 가깝다.
방산은 지방정부 혼자 키울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국방부, 방위사업청,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지방정부, 대학, 연구기관, 체계기업, 협력업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방산수출 컨트롤타워와 정책금융·세제 지원이 효과를 내려면, 지역 단위에서는 이를 받아낼 산업 지도와 기업 목록, 인력양성 계획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단체장의 역할은 단순한 투자 유치 행사가 아니라 조정자이자 설계자에 가깝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모든 지역이 똑같은 방산 도시를 꿈꾸는 일이다. 창원은 기동·화력과 기계 가공, 대전은 국방 연구개발과 드론·센서, 구미는 전자·통신·반도체와 유·무인복합체계처럼 각자의 비교우위가 다르다. 전남처럼 우주·해양·에너지 자산을 가진 지역은 기존 방산 모델을 뒤따라가기보다 감시정찰, 해양 무인체계, 항만 경계, 이동식 전력, 우주안보 같은 미래형 방산 분야에서 틈새를 찾아야 한다. 지역마다 산업 DNA가 다른데 같은 처방을 내리면 결과는 비슷한 전시관과 빈 산업단지로 끝날 수 있다.
이제 당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전 선포가 아니라 실행계획이다. 당선 직후 100일 안에 지역 방산경제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지역 방산 자산 목록부터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공무원만이 아니라 체계기업, 협력업체, 대학, 연구기관, 금융기관, 군 운용 전문가, 수출·인증 전문가가 함께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K-방산 공약을 지역경제로 끌어오려면 어떤 기업이 어떤 공정을 맡을 수 있는지, 어떤 인력을 길러낼 수 있는지, 어떤 부품을 국산화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특화 분야도 좁혀야 한다. 방산, 드론, 로봇, 인공지능, 우주항공, 반도체를 모두 하겠다는 공약은 듣기에는 화려하지만 실행 단계에서는 힘이 흩어진다. 지방정부가 해야 할 선택은 무엇부터 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다. 전남 역시 해양 감시, 우주 기반 안보, 국방 에너지 시스템처럼 서로 연결 가능한 분야를 골라야 한다. 고흥의 우주, 목포·영암의 조선·해양, 여수·광양의 소재·항만, 나주의 에너지·ICT가 따로 움직이면 방산 전략은 사업 나열에 그칠 수 있다. 순천은 정주 기반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방산을 위한 대학·연구조직과 산학연 협력 기반은 사실상 비어 있다. 광양만권 산업벨트와 전남 동부권 생활권을 잇는 역할을 하려면, 먼저 방산 인력 양성, 연구개발 연계, 기업 지원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답해야 한다.
방산 수출의 지역 환류 구조도 필요하다. K-방산 수출이 늘어도 지역 기업이 단순 하청에 머물면 지역경제 효과는 제한된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방산 수출기업 지원과 시장 다변화 정책도 지역 협력업체의 기술 고도화와 매출 증가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다. 구매국의 현지 생산 요구가 커질수록 국내 지역경제로 돌아오는 몫은 줄어들 수 있다. 지방정부는 체계기업의 수출 성과가 지역 협력업체의 인력 채용, 장비 투자, 공동 연구개발로 이어지도록 협약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전략도 빠질 수 없다. 지역 청년은 추상적인 첨단산업 구호에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학과를 나오면 어떤 기업에 갈 수 있는지, 어떤 자격을 갖추면 어떤 경력 경로가 열리는지 보여줘야 한다. 방산 마이스터 과정, 계약학과, 재직자 전환교육, 군 전역 장병 기술전환 프로그램을 지역 기업 채용과 묶어야 한다. 정부 차원의 K-방산 인재 양성 공약도 지역의 교육·채용 구조와 연결될 때 현장성이 생긴다.
방산을 지역 관광성 이벤트로 소비해서도 안 된다. 전시회와 포럼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산업은 크지 않는다. 진짜 성과는 시험평가 장비 공동 활용률, 국산화 성공 품목, 지역 기업의 방산 매출 증가, 수출 협력업체 편입, 청년 채용, 기술 이전, 특허와 인증 건수에서 나온다. 지방정부는 임기 초부터 이런 지표를 공개하고 점검해야 한다.
K-방산은 이미 국가경제의 중요한 성장축으로 떠올랐다. 이재명 정부의 공약이 국가 차원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지방정부의 과제는 그 방향을 지역 산업과 일자리로 번역하는 일이다. 그 성과가 어느 지역의 공장으로, 어느 협력업체의 매출로, 어느 청년의 일자리로 흘러갈 것인가. 방산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면 답은 분명하다. 지역마다 다른 산업 지도를 먼저 그리고, 특화 분야를 좁히고, 중소기업과 청년에게 돈과 기회가 흐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방산 클러스터는 이름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6·3 지방선거 이후의 시간은 공약을 반복하는 시간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K-방산 전략과 지역 공약을 맞물리게 할 실행 시스템을 설계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당선자들이 이를 해낼 수 있다면 방산은 지역경제의 새 엔진이 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방산 공약도 선거가 끝난 뒤 사라지는 또 하나의 현수막에 그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