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안보 불안은 여전히 높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하고 있고, 중동의 군사적 긴장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국방비를 늘리고 무기 확보에 나서는 상황에서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방산 수요는 확대되는데 국내 방산기업의 주가와 향후 실적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K-방산의 성장 신화에 균열이 생긴 것일까.
최근 시장이 주목하는 위험 요인은 신규 수주 둔화와 수주잔고 감소다. 그동안 한국 방산기업은 폴란드 수출을 중심으로 전차, 자주포, 다연장로켓 등에서 대규모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대형 계약의 후속 물량 확보가 지연되고 신규 수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성장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방산 수요와 국내 기업의 수주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계 각국이 국방비를 늘린다고 한국 기업이 그만큼 수혜를 얻는 것은 아니다. 구매국의 자국 산업 육성 정책, 기술 이전 요구, 현지 생산 조건, 외교·안보 협력 등이 수주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폴란드 중심의 수출 구조는 성장의 발판인 동시에 위험 요인이다. 특정 국가와 일부 무기체계에 수출이 집중되면 후속 계약 일정이나 해당 국가의 재정 상황, 정치적 변화에 따라 기업의 실적 전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제는 유럽을 넘어 중동과 아시아·태평양, 북미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
문제는 수주잔고와 실제 수익성의 차이다. 방산기업의 수주잔고는 미래 매출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지만, 계약이 곧바로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시설 확충과 인력 확보, 핵심 부품 조달, 현지 생산체계 구축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납품이 지연되거나 원가가 상승하면 대규모 수주도 기대만큼의 수익을 보장하지 못한다.
주식시장 역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방산기업의 주가는 미래 수출 확대와 글로벌 안보 수요를 선반영해 왔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가 높아진 만큼 신규 계약과 실적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주가 조정은 불가피하다. 결국 투자자들이 확인하려는 것은 수주 규모가 아니라 수주의 질과 이익의 지속성이다.
글로벌 경쟁구도의 변화다. 한국 방산의 초기 경쟁력은 가격 대비 성능과 빠른 납기였다. 유럽 주요 국가들이 방산 생산능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은 신속한 생산과 공급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국 방위산업 육성과 역내 공급망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역시 자국 방산기업의 생산능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제 해외 구매국은 완제품 구매만을 원하지 않는다.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부품 공급, 정비·유지보수까지 요구한다. 단순히 무기를 판매하는 기업에서 구매국의 방위산업 생태계를 함께 구축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전환해야 한다. 향후 방산 수출 경쟁력은 무기체계의 성능뿐 아니라 현지 산업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미래 전장의 기술 전환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과 대드론 방어체계, 전자전, 위성통신, 정밀타격, AI 기반 지휘통제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전차와 자주포, 전투기 등 기존 무기체계의 경쟁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개별 무기만으로 미래 시장을 주도하기는 어렵다. 탐지·추적·지휘통제·타격이 연결되는 통합체계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방산도 기존 무기 수출에서 벗어나 AI와 로봇, 우주·위성통신, 무인체계를 결합한 통합 솔루션으로 경쟁력을 확장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제품 다변화가 아니다. 제조업 중심의 방산 수출구조를 첨단기술 기반의 방위산업 생태계로 전환하는 과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수출금융과 정부 간 협력, 외교적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국내 방산기업의 생산기반과 핵심 소재·부품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방산 수출이 개별 기업의 영업 성과에만 의존해서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산업전략과 기업의 기술·사업 역량이 결합돼야 한다. K-방산은 지금 성장의 정점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의 출발선에 서 있다. 글로벌 국방비 확대라는 기회가 존재하지만 그 기회가 한국 기업의 수주와 수익으로 자동 연결되지는 않는다. 전쟁은 무기 수요를 만들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방산산업의 경쟁력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제 K-방산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대형 수주 발표가 아니다. 수주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안정적으로 생산하며, 높은 수익성을 확보하고, 차세대 기술로 시장을 주도하는 산업구조다. 방산 수출 4대 강국이라는 목표 역시 수출액의 순위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입지와 독자적인 기술력, 생산능력, 국제적 신뢰를 갖춘 국가가 진정한 방산 강국이다. 시장의 경고를 위기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K-방산의 성장 방식을 바꾸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